“미국 커피 마시면서 북한 보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지난 12월 중순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커피 컵을 손에 든 관광객들이 일렬로 늘어선 망원경과 스크린 앞에 서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현장 오디오] 학교같은데, 그죠? 사람이 다니네요. 어른들 같아, 애들이 아니고.
이곳은 지난 11월 28일 새로 문을 연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민간인통제구역 내 최초의 스타벅스로, 북한이 보이는 전망대에 들어섰습니다.
한국전쟁 다시 주요 격전지 중 하나였던 애기봉은 2021년 평화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평화를 상징하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강, 임진강, 그리고 북한의 예성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강 건너 1.4km 거리에 북한 개풍군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공원의 입장료는 3천원.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해병대원의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입장이 가능합니다.
문을 연지 보름이 지났지만, 평일에도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구름다리와 긴 오르막길을 걸어 전망대 2층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커피보다 망원경을 먼저 찾습니다.
[현장 오디오] 여기 학교인가? 회의장인가? 여기도 사람 내려온다!

의정부에서 온 관광객 김모씨(70대)는 친구들과 김포 관광에 나섰다가 뜻밖에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엿보게 됐습니다.
[김모씨] 우리 60년대 같아요. 다 옛날 집 같고, 폐가 같아요. 뻘건 글씨로다가 김일성 찬양하는 게 붙어 있네요. 우리 5-60년대 살던 거랑 똑같네, 아니 그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네요. 그때는 자유가 있기나 했죠.
친구들이 모두 카페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실시간으로 북한 땅을 비추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김모씨] 아쉽죠. (분단되지 않았으면) 수없이 왔다갔다 했을텐데 이렇게 쳐다만 보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가족 단위로 온 관광객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여기 와봐!”라며 신기한 듯 까치발을 하고 북한을 관찰합니다.
대구에서 온 대학생 정다혜 씨는 북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전송합니다.
[정다혜 씨] 이렇게 가까울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맨눈으로도 북한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서울 중간에도 한강이 흐르듯이, 저기도 강을 사이에 뒀지만 그냥 다른 동네인 것 처럼 느껴져요.

이처럼 가까이 보이는 북한 땅. 그러나 마음의 거리는 사람마다 달라 보입니다.
한 김포 주민은 커피를 들고 복잡한 심경을 표현합니다.
[기자]뭐 시키셨어요?
[김포 주민] 라떼요. 미국 커피 마시면서 북한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긴 해요.
그는 강 너머 보이는 북한의 낙후된 시설과 주민들의 생활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입니다.
[김포 주민] 시설이 노후되긴 했어요. 근데 그들의 삶이니까 그거까진 뭐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통일이 된다한들 (남북 사람들이 서로) 익숙해질지는 모르겠네요, 아직은.
<관련 기사>
[ 북 대남소음에 접경 주민들 “차라리 귀 먹었으면…”Opens in new window ]
[ 대북전단 작업실 가보니...최대 1500장 살포Opens in new window ]
[ 스타벅스 입점한 남북접경 애기봉…“2030 방문객 급증”Opens in new window ]

“그래도 일상은 계속돼요”
이틀 뒤, 파주시 탄현면 남북 접경지역의 한 카페.
카페 옥상에 올라서니 자유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 너머 임진강이 흐르고, 그 뒤로 북한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낡은 아파트 몇 동과 주택이 보였지만 적막한 분위기 탓인지 사람이 산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반면, 카페 내부는 색색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인형이 연말 분위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대성동 마을이나 강화도만큼 소리가 크게 들리진 않지만 이곳 역시 북한의 대남 스피커 소음이 닿는 곳입니다.
따뜻한 홍차를 우리던 카페 사장에게 소음에 대해 묻자, 주저없이 “최악이다”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몇 달째 계속되는 소음이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시간, 카페 옆 글램핑장(야영장)을 운영하는 김영민 씨와 직원들은 입구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반짝이는 조명을 달고 있었습니다.
[김영민 씨] 방 안에 있으면 덜하지만 산책이나 야외 캠핑하는 손님들은 '무슨 소리가 난다'고 얘기합니다. 귀신 소리나 깔깔대면서 웃는 소리가 들리면 너무 가까이에서 들리니까 무섭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요.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묵묵히 일상을 살아갑니다.
[김영민 씨] 계속 여기에 살다보니까 그렇게 크게 걱정되진 않아요. 전쟁 걱정도 하지 않아요. 어느 나라든 누가 쳐들어 올 가능성은 있지만, 사람들이 그런 걸 매일 걱정하며 살지는 않잖아요.
철조망 뒤로는 회색빛 북한 땅이, 앞으로는 바쁜 손길로 산타와 루돌프 장식을 설치하고, 손님들을 위해 바베큐 화로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자가 인천시 강화군, 경기도 파주시와 김포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평화의 길’, ‘자유로’, ‘평화전망대’ 등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이름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계절은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